금산교회 김종원 목사가 순교비와 한국기독교 순교사적지 제13호 현판 앞에서 세 순교자의 믿음을 기억하고 있다. 최화랑 기자 총소리와 몽둥이 앞에서도 끝내 믿음을 놓지 않았던 세 사람의 이름이, 전쟁이 끝난 지 76년 만에 마침내 순교자로 등재됐다.
예장 합동 총회 역사위원회는 지난 13일 금산교회에서 '순교자 등재 및 한국기독교 순교사적지 제13호 지정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자리에서 역사위원회는 금산교회에 순교사적지 지정증서를 전달했으며, 참석자들은 세 순교자의 신앙을 기렸다.
이번 지정은 수년에 걸친 절차의 결실이다. 금산교회는 2022년 당회에서 세 사람을 순교자로 등재하기로 결의했고, 이후 노회와 총회의 심의와 역사위원회의 현지 실사 등을 거쳐 지난해 총회에서 순교자 등재가 최종 확정됐다. 특히 김두현 집사는 이번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돼 순교자로 인정받았다.
예장합동 총회 역사위원회가 주관한 금산교회 순교자 등재 및 한국기독교 순교사적지 제13호 지정 감사예배에서 참석자들이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금산교회 제공1950년 10월 30일 밤, 조기남 전도사는 성도들과 가족들의 거듭된 피신 권유를 거절했다. "교회를 지키고 주일예배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그는 예배 인도와 신앙 지도의 책임을 물은 공산군의 총에 맞아 순교했다.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손자 고(故) 조신광 집사는 생전에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직접 증언하기도 했다.
동네 앞산에서 찬송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던 김윤철 집사는 1950년 좌익 세력에 의해 몽둥이로 맞아 순교했다.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던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너는 나를 죽일 수 있어도 영혼까지는 죽이지 못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김두현 집사는 1950년 8월 27일, 인민위원회 사무실에서 몽둥이로 폭행을 당한 뒤 자택으로 돌아와 3일 만에 순교했다. 주일학교 교사이자 집사였던 그는 겸손과 친절로 성도들을 섬겼으며, 직접 주일학교 교가를 지어 가르치기도 했다. 폭행을 당하는 순간에도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고 전해지며,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은 그를 "천사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한국기독교 순교사적지 제13호로 지정된 금산교회 전경. 최화랑 기자 금산교회 김종원 목사는 "7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순교자들에 대한 예우가 이뤄지게 됐다"며 "세 순교자의 삶이 믿음과 생명의 씨앗이 되어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순교적 신앙을 일깨우는 유산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