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어느 주일 아침, 남원동북교회에 근처 아파트 주민의 전화가 걸려왔다. "일요일 이른 시간부터 교회 스피커에서 땡 하고 나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는 항의였다. 교회가 이웃 주민들의 항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주일마다 교인들을 불러모았던 스피커 종소리와 연주음을 대안도 없이 갑자기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를 받고 황망해하던 김범준 담임목사의 뇌리에 불현듯 떠오른 것이 있었다. 교회 앞마당 수돗가에 오랫동안 방치돼왔던 오래된 종이었다. 이 교회에 부임한 지 불과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던 김 목사는 교인들에게 이 종이 왜 여기 이렇게 방치돼 있는지 물었다. 교인들은 "엿장수에게 가져가라 해도 무거워서 못 가져가고 그냥 남겨진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그렇게 무심히 방치됐던 이 종이 교회의 스피커 소리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리고 2004년 9월 교회 설립 기념 주일, 이 종이 교회 종탑에 걸렸고, 비로소 그 소리를 울렸다. 그렇게 종소리가 울린지 지금까지 20년이 다 돼가지만, 남원동북교회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이웃 주민들의 항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
남원동북교회 선교종남원동북교회가 이웃의 항의를 그냥 넘기지 않고 배려하는 과정에서 그 본모습을 드러낸 이 종은, 교회 종탑에 걸려 교회종으로 역할을 하면서부터 서서히 자신의 역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회종이 교회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교회 안에 이 종의 연원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는 교회의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김범준 목사는 교회의 역사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2005년 드디어 교회종의 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1954년 남원동북교회 종탑 앞에서 찍은 "한정옥 집사 성종헌납기렴"이라고 쓰인 사진이 발견된 것이다.
남원동북교회 선교종 (1954년)그리고 18년이 흐른 2022년, 김범준 목사는 당시 99세였던 한정옥 권사와 연락이 닿는 기적 같은 기회를 얻게 됐다. 김범준 목사를 만난 한정옥 권사는 "교회종은 남편 김억순 총경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무공훈장을 받을 때 함께 받았던 포상금 300만환 전액을 봉투째 기부해서 마련한 것"이라고 증언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정면으로 관통했던 김억순 총경이라는 인물이 민족의 아픔을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하고자 기부한 것이 바로 남원동북교회의 교회종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 증언을 통해, 남원동북교회의 '선교종'으로 불리게 된 교회종은, 1952년 창립돼서 2022년 70주년을 맞은 남원동북교회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해 온 소중한 유산이자 남원의 역사적 유형 자산으로 인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202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총회에서 한국기독교 유물 7호로 선포된 데 이어, 2023년 남원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남원동북교회 선교종남원동북교회 한 구석에 가련하게 방치돼 있던 종이 지역사회를 배려하려는 교회의 노력 속에 발견된 일, 그리고 그 교회종의 역사와 의미가 우연처럼 보이는 기적 같은 만남 속에 드러난 일, 그리고 그 역사 속에 남원시민의 시계탑이자 영혼을 깨우는 역할을 담당해온 이 교회종이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유물이자 동시에 지역사회를 빛내는 유산으로서 비로소 인정받은 일, 이 모든 것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남원동북교회는 2023년 11월 28일, 교회 선교종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는 <김억순 경무관 총무무공훈장 수여 7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이 세미나에서 한국기독교사적협의회장 손산문 목사(영남신대 겸임교수), 전라북도 자치경찰위원회 방춘원 사무국장 등 5명의 발표자들이 남원동북교회 선교종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을 짚고 신앙적 의미를 해석하는 시간을 이어갔다.

세미나를 마련한 김범준 목사는 이 자리에서 "남원동북교회 선교종처럼 지금도 한국교회 어디엔가 숨겨져 있거나 미처 살피지 못해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한 역사적인 자료와 물품, 기록들이 있을 수 있다. 이것들이 잘 발굴돼서 그 가치를 드러내고, 그 안에 담긴 소중한 역사적, 신앙적 가치를 후대에 물려주는 작업이 있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남원동북교회 김범준 담임목사교회와 지역사회의 유산으로 지정된 남원동북교회 선교종은, 유물의 안정적인 보존을 위해 교회의 주요 절기인 새해 첫 주일, 부활주일, 교회설립기념주일, 추수감사주일, 그리고 성탄주일, 이렇게 5번을 울리게 됐고, 그 외 나머지 주일에는 새로운 종탑 안에 걸린 종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남원동북교회에 세워진 두 개의 종탑과 두 개의 종은 앞으로도 교회와 지역사회를 잇는 다리가 되고 복음의 메아리가 되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울리게 될 것이다.
남원동북교회 두 개의 종탑과 두 개의 종